유상철 죽음 축구 선수, 감독 별세.. 그는 누구였나
유상철 죽음 축구 선수, 감독 별세.. 그는 누구였나
안녕하세요,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2019년 11월 췌장암 하재 판정을 받고 1년 7개월간을 투병했습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리며,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복통과 함께 황달이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피로감 등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상철 그는 누구였나? 유상철 감독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과 일본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또 최근 항암치료를 받기 이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재직했습니다.
축구선수 유상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유상철 감독은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면서 차례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요코하마, 가시와 레이솔 등에서 뛰었고, 2006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국내 프로에서는 142경기에서 37골을 올렸습니다. 그는 선수 동시대 한국 역사상 최고 멀티플레이어 도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수비에서 미드필더, 공격까지 모든 포지션을 맡을 무망지복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돼 조별리그 나중 벨기에전에서 동점 골을 뽑아냈고, 이환 2002년 한일 월 드컵에서는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골을 뽑아내며 한국을 4강에 올린 주역이 되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홍명보와 함께 월드컵 공식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표팀에서는 124회 출장, 18골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감독 유상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은퇴 이후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춘천기계공고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교봉 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를 지냈습니다. 2006년부터 KBS 축구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경력도 있습니다. 당시 그는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된 이강인을 지도하기도 했던 감독 유상철은 ’투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과 함께 나간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 전반전에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풀타임을 소화하고 경기 종료 직전 헤딩으로 결승골까지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유상철의 출전을 만류했으나, 그가 끝까지 고집했다며 그를 ’자신의 말을 안 들었던 선수’라고 회고했습니다.
환자 유상철 어떤 사람이었나? 그가 가진 투지는 투병 생활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는 췌장암 해석 이후에도 지휘봉을 놓지 않고 인천 유나이티드를 지도하며 강등 위기였던 팀을 1부 리그에 잔류시켰습니다.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에도 힘겨운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방송, 유튜브 등에 출연해 팬들과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이끌던 인천이 또다시 강등 위기에 놓이자 감독직 복귀에 의지를 보이는 등 인천과 축구에 대한 변함 없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유상철 추모에 대한 행열 이야기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날 오후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전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이어 대한축구협회(KFA)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유상철 감독의 선수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당신과 함께한 그 날의 함성과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소속 손흥민 선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KFA의 유상철 감독 애도 게시물을 공유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유상철이 어릴 적 지도했던 스페인 발렌시아 소속의 이강인 선수 역시 8일 SNS를 통해 유상철 감독을 애도하며 ”그때의 저는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축구에서 있어서 만큼은 제게 항상 진지하고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축구 인생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베푸셨던 드높은 은혜에 보답해드리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 유상철 감독과 함께 뛰었던 동료들도 그를 추모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 울산 감독은 한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심경을 나타냈다.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지난 30년간 동료이자 후배인 유 전 감독의 영면이 안타깝다. 그의 한국 축구를 위한 헌신과 노력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라고 애도했다.
이영표 해설위원 역시 유상철 감독을 추모하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안전놀이터 이동국 선수도 SNS에 “같은 시대에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편히 쉬세요”라고 애도했다. 그가 활약하고 지도했던 구단들에서도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인천 구단은 SNS 계정에 “당신의 열정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소서”라고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요코하마 구단 역시 공식 SNS를 통해 ”유상철은 4시즌 리그 80경기 30골을 기록하며 리그 2연패에 공헌했다”며 ”지난해 홈 개막전에서 닛산 스타디움에서 승리했을 때 ’여러분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던 약속을 실현하지 못해 유감이다. 명복을 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매체 ’풋볼존’은 ”유상철은 일본에서도 전설이다”며 ”J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상철과 너무 빠른 이별이 됐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수많은 일본 축구팬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며 고인을 조명했다.
축구선수 유상철, 축구감독 유상철 추모합니다.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